20년 만에 첫 내 집 마련했습니다
컨텐츠 정보
본문
안녕하세요, 보배 형님들.
20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끝에 드디어 제 이름으로 된 첫 집을 마련했습니다. 축하받고 싶어 이렇게 글 올립니다.
시작은 원룸, 시급 3,800원부터
2004년 군 제대 이후 조선소 현장에서 시급 3,800원부터 시작했습니다.
원룸 단칸방에서 시작해, 2009년에 첫째 아들이 태어나고, 2012년 둘째 딸까지 생기면서 공간이 너무 비좁아져 이사를 결심하게 됩니다.
16평 주공 아파트로의 첫 이사
회사가 있는 읍내에 주공 아파트가 분양되어 신청했고, 거실 1개, 방 1개짜리 16평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아들 4살, 딸 생후 6개월) “지금 아니면 결혼은 영영 못 하겠다”는 생각에, 가진 돈 하나 없이 아내에게 면사포라도 씌워주고 싶은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혼자 예식장 잡고, 나주에 계신 작은아버지와 어머니께 혼주를 부탁드려 소박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축의금으로 예식비와 식사비를 충당했지만, 마이너스였죠.
그때 친형이 300만 원을 보태주셔서 부족한 금액을 메꾸고 신혼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벌써 13년 전 이야기네요.
더 나은 삶을 위해, 20평 주공 아파트로
그 후 옆 동으로 이사하며 20평, 거실 1개 방 2개짜리로 조금 더 나은 집으로 옮겼습니다.
당시에는 젊은 혈기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조선소에서 정말 죽기 살기로 일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세금 떼고 나면 월 300만 원도 못 벌었고, 잔업을 해야 겨우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들 깨어 있는 얼굴을 일요일에만 볼 수 있었다는 것.
출근할 때 자고 있고, 퇴근하면 또 자고 있어서 말이죠.
인생의 전환점 ? 창업 도전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조선소 일감이 줄고, 결국 39살에 구조조정으로 권고사직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퇴직금 수천만 원으로 아내와 함께 떡볶이 프랜차이즈를 창업했습니다.
아내는 주방, 저는 배달로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몸이 지치고 코로나가 사그라들자 가게를 정리하고 2개월 휴식 후, 신도시로 이사해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게 됩니다.
여전히 달리는 중 ? 낮엔 직장, 밤엔 치킨배달
신도시 장사는 쉽지 않았습니다. 세대수도 적고, 경기 침체로 매출도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결국 투잡을 시작했습니다. 낮엔 회사, 퇴근 후엔 오토바이로 치킨 배달하며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드디어! 첫 내 집 마련
이렇게 달려온 끝에 드디어 제 이름으로 된 첫 집을 마련했습니다.
아직 아파트 절반은 은행꺼지만요 ^^;
생각해보니, 그동안의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네요.
무엇보다 아무런 비빌 언덕 없이 서로 의지하며 묵묵히 함께해 준 아내,
저의 든든한 동반자 강여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보, 정말 고마워!"
관련자료
cycle6477님의 댓글
머 좋은 직장도 아니고 노가다판 돌다가 중소기업 입사해서 지금까지 신차 3번바꾸고 얼마간의 부채는 있지만
내집 이사가는날 애가 2살때라 혼자 빈집 와서 앉아 괜히시리 눈물이 나던 그순간 참.. 만감이 교차 합디다...
어렸을쩍 부모님 따라 집이 없어서 지겹게 이사다니던 기억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계셨음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마음에 참 ...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아이가 어리니 살아갈 날이 참 어렵지만 또 화이팅 외치며
늙어가야 가장몫을 하겠지요.. 평생 사치를 모르고 살았는데 젊었을때 흔한 해외여행한번 못가본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제 나닮은 이쁜 딸랑구 보며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다들 힘냅시다 재묭이 형님이 나섰으니 잘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