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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임전무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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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배급받아처먹고덤블링돌아야님의 댓글

개달라마들이 적극적으로 애국을 할수 있게 밀어주셔야 합니다
 
 배급을 신속히 처맥여 생계를 잠시 내려놓고
 애국질에 열중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깜밥튀밥님의 댓글

취침!!!
 
 참 어젯밤 글들 살피는 디
 차키 다르게 또 재탕으로 올려놨더라?

Noleft님의 댓글

1989년 10월 9일, 당시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청래(24)는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투쟁국의 이강토/이강자(가명·25세 가량)로부터 미 대사관저 점거 및 방화, 폭탄 테러 지시를 받고 "그레그(당시 주한대사) 처단과 민족 자주권 쟁취를 위한 반미 구국 결사대"를 조직해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4학년 김희준(20), 한신대학교 기독교육과 4학년 심상오(22), 건국대학교 화공과 4학년 조형석(22), 한양대학교 전자통신과 4학년 이선홍(24), 한신대학교 신학과 4학년 이대준(21)과 함께 건국대 국문과 학생회 사무실에서 나흘간 합숙하며 계획을 세웠다.
 
 사건 당일인 1989년 10월 13일 오전 6시 25분 경, 정청래를 비롯한 학생 6명은 서총련이 제공한 부산1허3004호 짙은 쥐색 포니엑셀 렌터카 승용차를 타고 서울시청 쪽에서 전속력으로 미국 대사관저 쪽으로 오다가, 남문에서 북쪽으로 20여m 쯤 떨어진 담장 바로 옆에 정차시켰다. 이후 준비해 온 사과탄 4개, 화염병 6개, 사제폭발물 4개 및 쇠파이프 등을 소지하고 정차한 차량 지붕을 밟고 높이 3m 가량의 담을 넘어 대사관저로 들어갔다.
 
 월담 직후 사과탄 및 사제 폭탄 1발을 터뜨렸으며, 폭발음을 듣고 달려온 경비원을 향해 2발을 다시 터뜨렸다. 이어 담에서 100여m 떨어진 대사 공관으로 접근, 미리 준비한 쇠파이프를 휘둘러 현관 유리창을 부순 뒤 공관 안 응접실로 들어갔다. 이들은 조지 H.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액자를 쇠파이프로 부순 뒤 접견 실에 있던 소파 4개와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 대사관저 직원들을 인질로 하여 "노태우 매국 방미 반대", "그레그 대사 취임 반대 및 추방", "수입 개방 압력 철회"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약 45분간 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대사관저에는 그레그 대사 부부를 포함하여 대사관 직원과 가족 20여명이 잠자고 있었고, 당시 학생들은 이들을 찾기 위해 응접실과 연결된 6개의 방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직원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치하여 직접 접촉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레그 대사 부부는 잠옷 차림으로 관저를 빠져 나와 탈출했다.
 
 임전무퇴 !!!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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