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더 해주겠다고 성관계 요구 아내에게 접근한 금융기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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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포항사람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보배드림에 글을 써봅니다.
1. 과거 기자님들과 유튜버분들께서 주신 도움의 대한 사건의 결론과 감사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글을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과거 포항 촉법소년에 관한 글을 쓴 이력이 있고, 이를 공론화 시켰으며, 해당 아이들은 이러한 처분을 받았습니다.
위 스크린샷을 보시면 단 한명만 청소년보호법위반으로 표기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재물손괴등)으로 표기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언론에도 나갔었지만 단 한 아이의 부모님만이 저를 따로 찾아와서 합의를 하였었고, 부모님께서 직접 쓰신 반성문도 제출해주셨었습니다. 그리고 벌금 역시 저 한 아이 부모님들만 납부를 하신것으로 전산에 나왔습니다. 어찌되었든 당시 관심을 주신 그리고 보도해주신 모든 기자님들, 유튜버님들, 그리고 보배드림의 선생님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진심입니다. 이후 저에게 따로 쪽지를 주신 기자님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배드림 사이트를 그리 자주 들어오지는 않아서 일일이 다 체크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혹여라도 이 문제에 대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시려는 PD님들이나 작가님들 혹은 기자님들께서 계시다면 보배드림 쪽지도 좋지만, 카카톡 아이디 baitclick로 연락주시면 제가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협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단 위 사건과 관련된 사항에 한해서입니다.
2. 새로운 이야기
과거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이번에는 현재 제가 진행하는 하나의 일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어느 한 금융기관과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 개인이 금융기관과 싸운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상적으로는 너무나도 무모한 행동일 것입니다. 또한 금융기관은 자체적인 메뉴얼과 대응책들이 있기에 아무래도 이번 싸움에서 제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을겁니다. 그렇다고해서 제가 예전처럼 언론의 힘을 빌리거나 혹은 여러분들께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의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저는 위의 미성년자 및 촉법소년 사건이 있을 당시 모든 언론사의 기자님들께 제가 하는 이 말은 꼭 담아달라고 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생존본능의 본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가장 크게 가져야하는 자부심과 책임은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것이 인간으로서 가져야하는 가장 큰 책임일 것이라고 저는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어쩌면 무모했던 사건에 대해 언론에 고발을 한것이고 말이죠.
이번 일은 제가 몇 년간 가슴에 묻어왔고, 아파해왔고, 지금도 아파하고 있는 그런 일입니다. 현명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저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시겠지만 혹여라도 저와 같은 일을, 제 아내와 같은 비극을 당하시는 분들이 더이상 이 대한민국에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가겠습니다.
3. 2017년 12월 6일 ~ 2018년 12월까지.
2017년 12월 6일 제 아내는 포항의 위치한 어느 한 금융기관에서 12억 1천 9백만원을 토지, 건물 담보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내는 꿈에 부푼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제 아내의 꿈은 포항 지방에서 숙박업을 운영하며 남은 생을 보내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마음대로 흘러가는 물결 같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아내는 대출 받은 이 돈으로 건물을 완공하고, 포항의 어느 한 지역에서 모텔을 개업해 운영하던 중, 당시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고 심적으로 힘들어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이때 당시 실질적으로 해당 금융기관에서 추가 대출까지 말이 되었었는데, 그 대출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 해당 금융기관을 방문하던 차에 당시 금융기관의 상무가 아내에게 접근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금융기관 상무는 당시 제 아내에게 대출을 알아봐주겠다. 제 3금융도 알아봐주겠다. 이런식으로 아내에게 접근을 했고, 이윽고 어느 순간 아내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정말로 그대로 말하기 힘들지만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제 아내는 여러가지를 지켜야하는 입장이었기에 그리고 곁에 아무도 없었기에 그리고 당시 금융기관 상무 역시 이혼남이라고 소개했었기에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그 요구를 들어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은 연인관계처럼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상무는 약속한 대출을 승인해주지 않았고, 대신에 제3금융 2부이자 대출을 소개하는가하면 자신이 지인들과 가지는 자리에 아내를 부르곤 했다고 했습니다.
2018년 당시 제3금융 2부이자 대출을 상무가 제 아내에게 소개하는 통화 녹음과 자신의 지인들과 있는 자리에 오라는 통화 녹음 저에게 있습니다. 또한 당시 해당 금융기관 상무와의 통장 거래 내역도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딱 여기까지만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너무나도 비극적이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제 아내는 약속받은 대출들을 받지 못했고, 또한 더 비극적이었던 것은 상무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뻔한 스토리지만 제 아내가 이 사실을 알자, 상무는 이혼을 하고 제 아내와 살겠다는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만 제 아내는 그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이를 정리하려고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금융기관 상무는 여러차례 제 아내가 운영하는 모텔에 찾아와서 여러가지 들어줄 수 없는 요구들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고, 모텔은 직원을 고용해 운영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렇게 실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2월 제 아내는 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우습겠지만 제 아내와 저는 첫만남에서부터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눴었습니다. 마치 결핍한 두 사람이 무언가 서로를 채워주듯 일상에서는 쉽게 나눌 수 없는 인도 영화 이야기라든지, 경영철학과 같은 각자의 이야기, 힌두 및 불교에 관한 이야기, 혹은 다른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저와 제 아내는 정말로 이상할 만큼이나 서로를 찾았고, 함께 하루가 지나가도록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긴 시간 동안 이야기 할거면 우리 집에 와서 한번 같이 지내볼래? 어차피 일하는 곳도 가까운데 우리집에서 같이 먹고, 자고, 그렇게 한번 지내볼래?'
제 아내는 처음에는 그러지 말자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처지와 깨끗하지 않은 여자라고 한참을 울면서 그동안 해왔었던 이야기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저는 해당 금융기관 상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단 한번도 더럽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저를 만나기 전의 일들이었고, 그런 자신의 치부조차도 그대로 말하는 그런 제 아내가 저는 오히려 더 신뢰가 갔었습니다. 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같이 지내고 같이 이겨나가보자고 그리고 누군가 당신 곁에 있어야한다면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아내를 따라다니며 저는 구애를 했었고, 같이 살아보고 아니라 생각할 때 그때 내 곁에서 당신이 떠난다면 그땐 아무렇지 않게 보낸다는 말을 했습니다. 대신에 나와 함께 지내고 싶다면 평생 함께 지내보자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4. 2019년 1월
저희는 정식적으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께서는 너무 빠른 만남이라고 이야기 하실수도 있겠지만 서른 후반의 나이였던 당시 저에게는 이런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여자라면 되겠다. 평생 같이 살 수 있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는 1월 초 해당 금융기관 상무에게 만나는 사람이 있으니, 그리고 이 사람과 결혼을 할지도 모르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마라고 통보했습니다. 이때 저는 아내가 통화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2019년 1월 그 동안 아내가 가지고 있던 대출 이자가 5.190%에서 5.390%로 인상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아내가 사망후 제가 아내의 이자 상환 내역을 보고 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아내는 이런 사실을 저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저에게 여러가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삶을 이야기하며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눴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운영하는 모텔에 필요한 것들과 어떤 식으로 경영할지에 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었습니다. 일단 아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매출과 은행 이자 상황이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운영하지 못해서 매출 하락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 상당히 고민을 했었고, 이에 대해서 해결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텔을 경영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고, 그리고 제가 직접 경영에 참여해보겠다고 했습니다.
2019년 4월 12일 저희는 법적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텔 경영에 실질적으로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그동안 조언과 방식에 대한 구사였다면 본격적으로 제가 직접 장부를 보고, 운영에 참여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사업자 등록증과 영업신고증도 저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저와 아내가 하나식 프로그램을 만들어 개선할때마다 그 개선점들은 매출이라는 결과로 따라왔고, 2019년 8월에는 기존 매출보다 매출이 2배 이상 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와 저는 웃으며 서로를 응원하고 칭찬해주며 그렇게 부부생활을 이어왔습니다.
(16개 객실로 올린 매출. 이 글씨는 제 아내 글씨이기에 제가 조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아내는 해당금융기관 상무의 연락을 받을때마다, 그리고 유난히 2019년에 잦아진 해당 금융기관의 상무 직속 대출담당자의 대출 상환 안내 전화를 받을때마다 상당히 심적으로 불안해했고, 자살시도를 2번이나 했었습니다. 또한 해당 금융기관의 상무와의 통화에서는 '더이상 연락하지마라고 했는데 왜 자꾸 연락해. 나 죽는거 보고 싶어서 이러는거야?' '진짜 연락할때마다 치욕스러워 죽고 싶은 심정이야'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직접 들었고, 대출담당자와의 통화에서는 '제가 죽어야 이게 끝나나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남편으로서 이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습니다. 가장 첫번째로 제가 해당 금융기관의 상무를 직접 만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제가 그러지 않길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내가 당시 저에게 했던 말은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는 자신이 정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저에게 말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 번이나 그냥 내가 가서 한번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빠르지 않겠느냐고 말했었지만 아내는 극구히 그것을 만류했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6월 초에서 중순경 아내는 해당 금융기관의 상무를 직접 만나서 정리하고 오겠다고 말해서 저는 나와 만나기 이전에 만난 인연이고, 어찌되었든 당신을 신뢰하고 존중하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6월 말부터 대출 이자율이 5.390%에서 5.049%로 바뀌고 5.029%로 바뀌었습니다. 이 이자율 변동 역시 저는 제 아내가 사망후 알게 된 사실입니다. 아무튼 당시 저는 해당 금융기관의 상무의 전화만이 문제였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하자고 저는 아내에게 제안했습니다. 당신의 요즘 패턴을 보면 이상하게 금융기관 상무와 대출담당자의 전화를 받으면 정신적으로 불안해하고 그리고 당신은 두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고, 나는 그것을 발견하고 당신을 말리느라 정신이 혼미할 정도이니 대출담당자에게 만이라도 연락을 하지 않도록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내는 이 제안에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만 되더라도 자신이 숨이 트일 것 같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직후 곧바로 해당 금융기관 지점에 제 계좌를 개설했습니다. 이때가 2019년 7월 입니다. 제가 이 이유가 아니었다면 해당 금융기관 지점에 계좌를 개설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진 다른 통장으로도 충분히 사업 운영이 가능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당시 대출 담당자에게 제가 직접 전화하여, 해당 모텔의 사업자 등록증과 영업신고증 모두 나의 앞으로 되어있고, 재무관리 역시 내가 직접하니, 대출 이자가 미납되거나 혹은 안내가 필요할 시 나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전화로 통보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당시 대출담당자에게 제가 이렇게 요청하는 사유는 가족이 해당금융기관 안내 전화를 받을 때마다 정신상태가 좋지 못하고 자살시도도 두번이나 했다고 이를 분명 말했습니다. 당시 대출담당자는 단순한 안내이고 절차라고 저에게 말했지만 저는 돈이 나가는 건 실질적으로 나의 돈이 나가는 것이고, 안내를 받는 주체가 부담을 느끼면 그것이 독촉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연락을 아예 하지 마라는 것이 아닌, 안내를 하는 주체를 실질적인 매출을 발생시키고, 실질적인 재무관리인인 나로 바꾸는 것일 뿐인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해당 금융기관 상무와 대출담당자는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아내가 해당 금융기관 상무에게 그렇게 대한 후, 유난히 대출담당자가 연락한 날을 기점으로 당일이나 하루 이틀 후에 상무가 제 아내에게 전화나 문자를 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해당 금융기관에 이자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그리고 이자 연체를 주구장창 한것도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해당 대출 상품은 한달만 미납되어도 담보를 경매로 올리는 대출상품이었습니다. 즉, 저희가 단 한달이라도 미납을 했다면 토지와 건물은 경매가 되는 대출 상품이었습니다.
2019년 9월 제 아내는 돌연 '전화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대출 받은 것이 너무 원망스럽다' 라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저는 2019년 7월부터 머리를 빡빡밀고 다녔었습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바로 2019년 6월부터 유난히 극심하게 불안정한 정신상태의 아내를 조금이라도 웃게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돌연 2019년 9월 19일. 제 아내는 저에게 또다시 자신은 더러운 여자다라는 말, 자신의 대출 선택이 너무 힘들다는 말. 자신이 사라져야 끝날 거 같다는 말을 했었고, 9월 21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9월 21일 아내가 사망한 이후 저는 현재까지 머리카락을 단 한번도 자른적이 없습니다.
저는 아내의 장례이후 해당 지점 대출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강하게 항의를 했고,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 아내 가는 길 서운하지 않게 밥 한그릇, 물 한잔 떠서 본인의 집 식탁 한 곳에 놔달라고 말했습니다. 대출담당자는 저의 요구대로 그렇게 밥한그릇과 물한잔 떠서 식탁에 올려 사진을 찍어 저에게 보냈습니다. 그 이후로 대출 담당자의 안내는 멈추었습니다. 또한 아내가 사망한 후 이 사실을 몰랐던 해당 금융기관 상무는 9월 23일. 제 아내 휴대전화에 문자를 보냈었습니다.
5. 이후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하실겁니다. 그때는 왜 그냥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이러느냐?
당시 저도 노력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이를 민원제기 하려고도 했었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대응을 할 것도 고민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처음으로 경찰서를 찾아서 이 사실을 말했을 때 해당 경찰서 수사관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와서 진술하지 않는 이상. 고소 어려울 것 같아요.'
'그 사람 우리 학교 선배인데, 법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아. 고소해도 이기기 어려울거예요. 죽은 사람이 돌아와서 진술하지 않는 이상'
경찰서 안이라서 녹취를 할 수 없었던것이 너무나 억울합니다. 그리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대응을 하려고도 해봤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명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변호사 선생님들은 '신'이 아닙니다. 즉, 고소 및 민원을 제기하는 주체, 본인이 명확하게 증거와 여러가지 진술을 똑바로 제출해야 합니다. 특히 감정에 얽메이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 저는 정신상태가 고르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떠나버린 후 매출도 급하락 하였고, 재정상태 역시도 좋지 못했습니다.
(당시 시절 병원 진료 받은 내역)
저 역시도 당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왜인지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떠난 아내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고,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모든 것이 싫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번은 직원이 그런 시도를 하는 저를 발견하고 울면서 말리고, 또 한번은 자주오는 손님이 저를 말려 밤새도록 이야기한 것을 시점으로 그래도 정리할 것은 정리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서 버티듯 지냈습니다. 건물과 땅은 얼마지나지 않아 곧바로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고 말이죠. 망연자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건물은 경매로 넘어갔고, 동산 재산 역시 모두 저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리가 될 것이 정리되고 아무것도 없는 처지의 저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다른 나라의 사람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보고 몇 년간 정말로 하루도 잊지 않고 이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몇년이라는 시간이 거짓말처럼 흘러 2022년. 저는 당시 금융기관 상무에게 카카오톡 메세지 하나를 남겼습니다. 그 어떤 금전적인 보상을 말한 것도 없었고, 다만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2019년 9월 당시 제 아내가 사망후 이 사람이 제 아내 휴대 전화로 문자 메세지를 보낸 것을 보고 이때 처음 이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아서 이 사람에게 제가 연락 했을 때 이 사람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정도 있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다. 사망한 고인과는 연인 관계였다. 너와 사망한 사람의 혼인 관계는 정당하지 않다. 나와 고인이 불륜사이였다는 증거 있느냐?''
너무나 이해되지 않는 발언이었습니다. 당시에 살해충동까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 사람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저는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에게 깊이 반성하고 두번다시 이런 일이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답장은 없었고, 이후 알게된 사실이지만 2023년 2월 이 해당 금융기관의 상무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25년이 된 시점에 저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심정으로 제가 느끼는 이 절망적인 슬픔과 억울함. 제 아내가 겪은 비극이 두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위에 계란 던지듯 목소리를 내기로 했습니다.
6. just + ice
사람들은 살아가며 가끔 '정의'라는 단어를 표현합니다. 말장난처럼 여겨질지는 모르겠으나 정의는 영어로 justice로 표기 한다고도 합니다.
그냥 + 얼음처럼
저의 상황을 생각해봤습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났고, 돌이킬 수 없는 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저는 현재 해당 금융기관에 민원을 제기한 상황이고, 당시 대출담당자에 대해서는 형사고소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아마 둘다 패소할 것입니다. 이유는 저는 변호사 없이 모든 일을 진행 할것이고, 저는 미흡할 것이며, 저는 이들의 메뉴얼과 대응방식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다들 잘 아실겁니다. 이미 해당 금융기관에서는 당시 상황에 대해 몰랐으며, 2023년 2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상무의 개인적 일탈이며, 대출 담당자는 상사의 지시와 금융기관 메뉴얼대로 했을 뿐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해당 금융기관에서는 '아! 이런 지렁이 같은 사람도 밟으면 꿈틀거리는구나' '귀찮게는 하는구나' '내부 감사를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 정도의 메세지를 주고 싶고, 대출담당자는 앞으로 고객의 가족이 자살의 위험을 알리거나 그러할 경우 안내를 다르게 해야한다는 걸 인지하였으면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여행을 다니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황과 상황을 보기보다 유난히 녹취 증거, 영상 증거, 죽은 사람이 살아와서 진술을 하는 방법,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고, 이의 제기를 하는 것도 힘들어져버린 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저의 억울함을 그리고 도와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질것입니다. 다만, 저의 글을 단 한분이라도 여기까지 보셨다면 우리는 왜 이런 행정에 익숙해지는 것인지에 관해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다음 세대에게는 위력에 의한 강요, 배임, 직권남용, 강재추행치사, 채권 추심에 공정함, 자살 방조, 강요, 책임 회피 등의 일이 없기를 바라며 글을 줄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