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의장2부 정ㄷㅎ(feat.나의 이름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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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이름은 이ㅇㅈ 를 올리려고 마음먹고 글을 올리는 저는
이ㅇㅈ의 외손자 이ㅅㅈ입니다.
이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제는 가족도 아니고 이복남매도 될수 없는 사이가 되기에 바로 잡을수 있을때 바로 잡을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글을 올립니다.
글이 많이 길어서 사실을 바탕으로 저자들이 하는 짓거리에 반박을 해 가며 글을 올리도록 해가겠습니다.
글을쓰는 본인이 출생전의 일들은 동네 어른들의 증언으로 모두 확인된 사항 입니다.
(아울러 1주일에 한편식 올리 려고 했지만 현대자동차의 휴가기간이여서 조금 시간을 둡니다.)
제 1장 결혼과 출산,성병(매독)
혼외자,씨받이혼외자
나의 할머니 이름은 이ㅇㅈ
이ㅇㅈ는 1941년생이다.
그의 남편은 1940년생 정ㅅㄱ
1959년 두사람은 부부로써 악연이 시작 되었다.
이ㅇㅈ와 정ㅅㄱ은 결혼 직후
첫째 장녀 정ㅁㅎ(1959년생)를 출산하고 이후 정ㅁㅅ(1962년생)을 출생한다.
여기서부터 이 모든 악연이 시작한다.
정ㅁㅅ을 출산전
정ㅅㄱ은 군 입대를 하게 된다.
이 군생활중 정ㅅㄱ은 외출 및 외박을 나와서 사창가를 전전 하다
매독이라는 성병에 걸리게되고
제대로된 치료없이 시간이흘러 악성 매독으로 진행되어옴에
휴가를 나와 이ㅇㅈ에게 이 매독이라는 병을 옮기게 된다.
매독의 후유증으로 이ㅇㅈ는 더이상 출산을 할수 없게 되자
그때부터 정ㅅㄱ의 폭행이 시작되게 된다.(애기를 낳을수 없다는 이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ㅅㄱ은 현재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현 ㅇㅂ마을 소재의 한여자와 살림을 차려 산다.
이때도 이ㅇㅈ는 혼인관계중이며 이ㅇㅈ는 혼자서 논농사 밭농사 해녀물질을 해가면서 딸 둘과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있었다
1973년 정ㅅㄱ은 ㅇㅂ마을 상간녀와 혼외자인 정ㅁㅇ를 출산한다. 하지만 정ㅅㄱ은 ㅇㅂ마을 상간녀가 딸을 낳아다고 모른체 하며 상간녀와 정ㅁㅇ를 버린다.
상간녀는 미혼모로 정ㅁㅇ를 키울 방법이 없기에 정ㅅㄱ의 집앞에 정ㅁㅇ를 놓고 떠낫다. 이때 정ㅁㅇ는 젖먹이 갓난애기였다.
(한겨울 엄동설한의 아주 추운날)
집안 시어른들이 거두어키워야 된다고 하여 이ㅇㅈ는 정ㅅㄱ과 이ㅇㅈ의 호적에 등재하여 3녀로 키우게 된다.
그로부터3년뒤 집안의 대를 잊기 위해서
1976년 정ㅅㄱ은 부산 기장군 대변항의 한 여자에게 땅 300평을 주고 씨받이혼외자 아들을 얻게 된다.( 술만 취하면 하룻밤 풋 사랑에 아들이 생겼다 라고 읍조린다.)
이 아들이 현재 현대 자동차 의장2부에 근무하는 정ㄷㅎ이다.
제2장 결혼생활
주취폭력과 폭행, 폭언은 일상의 연속이였다.
부산 해운대 오산마을(동백중학교근처)에 혼외자들의 모친이 아닌 또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린 정ㅅㄱ을 이ㅇㅈ와 정ㅅㄱ의 어머니와 찾아내어 집엘 찾아갔다.
그때 정ㅅㄱ은 칼을 이ㅇㅈ에게 던졌다 그칼에 자신의 어머니가 맡아 팔에 큰 상처가 남았다.
"저년 죽으라고 던진칼에 울어머니 맞앗다.!"
술이 취하면 한동안 주구장창 이말을 해댓다.
그뒤로 계속되는 폭력에 도저히 못살겠다며 짐을싸고 도망가면 시어머니가 이ㅇㅈ를 찾아 왓다.
"너마져 가버리는 나는 어찌 사노..."
이말에 이ㅇㅈ는 다시금 집으로 돌아왔다.
정ㅅㄱ의 부친이 사망 한 이후 폭행과 폭언은 더더욱 심해졌다.
이ㅇㅈ의 큰사위(이ㅇㄱ)이 암투병끝에 세상을 떠낫다.
5살과4살 아들 둘 두고 끝내 눈을 감앗고 그리고 이때 죽은 사위 장례식에 들어온 부의금과 회사의 위로금을 정ㅅㄱ이가 기다렸다 자신이 전달 받어서 갔다
(돌아가신 이ㅇㄱ의 친구들의 증언이 현재 쏟아졌다.)
그때 당시 1987년도 돈으로 30만원 이였다 한다.
(이ㅇㄱ의 친구분의 증언으로는
기장에서 택시 타고와서 장례식장 밖에 택시 대기 시켜두고 돈을 챙겨 갔다고 한다.)
제3장 혼외자식들
3녀 정ㅁㅇ는 열심히 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해운대여상을 나와 부산은행 해운대 지점으로 입사를 했다.최씨 성의 사위를 만나 결혼을 했으나 은행을 퇴사하고 다단계에빠져 빚이 늘어나 최씨 사위는 이혼을 해야했고
이후 몇년뒤에 정ㅁㅇ는 경남진주로 진주교도소의 교도관 어떤 사람과 재혼했다.
매년 명절이면 정ㅁㅇ의 딸은
(개명 최ㅎㅇ 개명전 최ㅂㄹ) 교도관의 가족들과 함께가 아닌 이ㅇㅈ와 정ㅅㄱ의 집으로와서 지내야했다.
교도관이 지자식이 아닌사람이 명절에 자기집에 같이 있는게 싫다고 보냈단다.
사촌오빠로써 많이 챙겼다.
꼬맹이 시절부터 울산에 대학을 다니면서 필요시에 많이돌봐줫다.
난 정ㅁㅇ를 믿었다.
이ㅇㅈ가 쓰러지기 전까지...
정ㄷㅎ....정ㄷㅎ 나이 5살때
씨받이혼외자로 ㄱㅅ마을 2층집으로 왔다.
이ㅇㅈ는 많이챙기고 아들로써 잘키웟다. 그의 나이 10살에
부산 ㅅㅈ의 태권도를 보냈는데 태권도비를 오락실을가서 다 써 버렸다...이사실을 알게된 정ㅅㄱ은 당시 횟집을 하던 수족관에 정ㄷㅎ을 죽이려고
빠트려서 발로 발고 폭행하고 목조르고 수장시키듯 목을 졸라 물에 넣었다. 아들 살리고자 이ㅅㅈ가 말리고 도끼로 머리가 찍히면서도 말려서 정ㄷㅎ을 살려냈다.
이ㅇㅈ는 정ㄷㅎ에게 매를든적이 없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정ㅅㄱ의 폭행을 이ㅇㅈ는 자식들을 대신해서 막아 내고 자신을 희생했다.
정ㄷㅎ의 나이 고등학생때다 걷지를
못한다.단지 학교에서 체벌인가 했지만 다리 한쪽의 허벅지가 거의 3배로 커졌다. 발을디디지 못할정도라
정ㅁㅎ와 이ㅇㅈ는 세강병원(한서병원,현재 좋은강안병원)에서 허벅지의 뼈가 녹아 골수염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고
개복술로 골음을 다 씻어내고 하는 큰 수술을 받는다...다리를 못쓰는 아들을 위해 이ㅇㅈ는 몇달을 정ㄷㅎ의 똥오줌을 받아 내며 병상을 지켰다.그리고 몇년이 지나 군대를 간 정ㄷㅎ이 또다시 크게 아프다.. 이번에 손에 옻독이 옮앗는데 손이 또 곪고 골수염처럼 수술해야한다했다. 이ㅇㅈ와 정ㅁㅎ는 군병원이 아닌 외부 병원에 입원 시켜서 수술시키고 또 다시 이ㅇㅈ는 정ㄷㅎ의 병수발을 다 하고 퇴원할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 매독은 현재로는 치료가 능하나 1960년대엔 치료가 오래 걸리는 병이였다 네이버검색 *
그렇게 정ㄷㅎ은 군 제대 이후...
자신이 고등학교(부산 한국고교, 일명 코리아) 취업시절 다니던 현대자동차 업체로 재취업하며 부산시 기장군소재 집에는 명절 휴가등을 제외하곤 오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정ㄷㅎ의 이야기 이고
내가 겪은 정ㄷㅎ의 얘기를 하겠다.
나는 이ㅅㅈ 나의 아버지는 이ㅇㄱ이다...내 나이 5살에 암으로 사망하셨다.
그리고 나와 내 동생은
부산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5xx-w로 정ㅁㅎ와 정ㅅㄱ과 이ㅇㅈ의 집으로 들와서 살게 되었다.
정ㄷㅎ은 자신이 있던 다락방에서
자위 행위를 하다
나 이ㅅㅈ과 이ㅅㅎ을 불러 자신의 성기를 빨게했다.
내 나이 6살쯤이다.
( 트라우마같은 기억은 항상 남는다.나는 나의 아버지 장려식에 장지에서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한때 아리랑할매 라고 불리우던
정ㅅㄱ 집안의 머슴으로 살던집의 손녀인 xxx여와 나 이ㅅㅈ이 놀고 있었는데 정ㄷㅎ 의 다락방으로
"삼촌 다락방에 재밋는거 있는데 가자"
라며 그여자애와 나를 데리고 같고...
그 다락방에서 아리랑할매 손녀에게 몹쓸짓을 할려 했다...
근데 미수에 그쳤다.
당연하지 6살짜리 여자애에게 중학생께 안들어 갔다...
(잊고 살앗고 기억나지 않았지만
"영화 도가니"를 보고 기억이 떠올랏고 그뒤에 잊고있던 모든 기억이 떠올랏다.)
정ㄷㅎ과 나 이ㅅㅈ은 6살 차이 이다.
2005년 정ㄷㅎ의 아들 정ㅈㄷ이 태어 났을때다
정ㄷㅎ의 부인인 박ㅅㅎ이 아들 놓앗다고 연락이 왓고
울산의 보람병원 산후조리원실 제일 끝 조리원실에 정ㅁㅎ와 함께 갔다. 나와 정ㅁㅎ가 돈을 긁어 모아서 50만원 산후조리비용 쓰라고 박ㅅㅎ에게 줫다.
그리고 어찌 저찌 주말인거 같다.
나의 기억에 정ㄷㅎ과 2번의 술자리를 가졌던 기억이 있는데
그중 첫번째는 본인이 군대를 가기 몇일전날 이였다.
울산 코리아나 호텔 뒤에서(현재 성남동)
그때 당시 미용실에 근무하던 노랑머리의 누나와 정ㄷㅎ과 같이
맥주 한잔 먹으면서 정ㄷㅎ이 나에게 했던말이 기억 난다.
정ㄷㅎ"담배피나?"
이ㅅㅈ"응"
정ㄷㅎ"자'한대피라."
머뭇거리는 내가 담배 를 받아들자.
정ㄷㅎ"군대 가면 이게 니 유일한친구다.동기고 뭐고 믿지마라."
이게 내가 기억하는 정ㄷㅎ과 첫 술자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앞서 얘기한것처럼 정ㄷㅎ의 성
추행사건에서 두번째 술자리를 하게된다.이때가 정ㄷㅎ의 둘째 아들인 정ㅈㄷ을 출산하고 박ㅅㅎ은 산후조리원에 있을때다.
늦여름에 주말이였다.
ㄱㅅ마을에서 술한잔하자는 얘기가 나와 부산 해운대구 송정동에 이있는 현재편의점 자리에 그때 당시엔 조개구이집이 포차형식의 방가로로 있었다.
정ㄷㅎ과 나 이ㅅㅈ이 술을 한잔함에 있어
"부를 여자 있음 쫌 불러봐라."
나는 그 얘기에 내가 아는
Zzz여자 애를 불렀고
그렇게 한잔 두잔 기울이다.
나는 화장실에갔다.
소변을 보고있는데
비명소리가 들렸다.빨리 자리로 돌아 오니
술이취한 정ㄷㅎ이
Zzz를 반쯤껴 안고
티셔츠 안에 왼손을 넣어
ㄱㅅ을 주물 거리고 있었고
Zzz는 하지말고 손을 뿌리치고
있었다.
"하지마라 그라믄 안된다"
나의 말에 손을 빼고 먼산 보는
정ㄷㅎ에게서 zzz를 분리 시켜
택시 태워보냈고
정ㄷㅎ은 술이 취해서
조개구이집은 계산도 않은채
그 조개구이집 사장님과 언쟁을 하며 "내가 ㄱㅅ 이층집 아들이다." 을 3회 반복하고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낫다.
Zzz는 성추행으로 고소하겠다 하는거 겨우 겨우 달래서 말렸다.
(성추행 고소는 친고죄)
그리고 몇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또다시 술이 취한 정ㄷㅎ이 정ㅅㄱ과 이ㅇㅈ의 집에 옆집에 거주중인 정ㅁㅎ의 집에 집안 기제삿날
술을 먹고와서 정ㅁㅎ의 코를 찢어버리는 폭행을 행사하고
정ㅅㄱ은 정ㄷㅎ은 인간 안된다고 내친다.(정ㄷㅎ의 폭행 사건 경찰 조사 원본이다.)
그이후 정ㄷㅎ의 빈자리를
제사때마다 나 이ㅅㅈ과 이ㅅㅎ을 불러 정ㅅㄱ은 정씨집안 기제사에 제사를 지내게했다.
그렇게 정ㄷㅎ은 본가인 정ㅅㄱ의 집에 몇년동안 오지 않는다.
그러다 정ㅅㄱ이가 항문쪽의 질병으로 입원을 하게 되자 정ㄷㅎ을 부르게되고 본가로 온 정ㄷㅎ은 본인 자식들(정ㅈㄷ, 정ㅇㅈ)과 부인까지(박ㅅㅎ)
카니발을 타고 오면서 내리자마자
"뭐 얻어 처먹을께 있어서 여기오노"
라는 말을 뱉는다.
정ㄷㅎ은 자신이 이제 현대자동차 정규직이 되어서(2012년 현대자동차 불법파업 소송승소로 정규직으로 전환된것으로 본인은 알고있다.) 아버지가 자신을 부른다고 생각한거 같지만
정ㅅㄱ이 정ㄷㅎ을 부른 이유는 부산 해운대 백병원에 입원을 하기 위해서 인데 이때 정ㅅㄱ은 지금의 상간녀인 최ㅇㄴ이랑 병원에 같이 있고자 정ㄷㅎ을 불러 병원에서 병수발 중이던 이ㅇㅈ를 보내고자 불럿고 이에 정ㄷㅎ이
"아버지가 싫어하니 엄마 집에 가라"라며 이ㅇㅈ를 집으로 쫒아보내고 최ㅇㄴ을 백병원에 병수발하게 용인한다.
이때부터 정ㄷㅎ, 박ㅅㅎ,상간녀 최ㅇㄴ,정ㅅㄱ의 기막힌 거래가 시작된다.
이ㅇㅈ가 병원에서 쫒겨 나던날
나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갈 차비가 없단다.
버스탈돈도 없단다. 왜 이ㅇㅈ 할머니가 나에게 전화 했는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눈물이 난다.
아무택시나 타고 기사님 바꿔 달라했고 택시비를 계좌로 보내드릴테니 모셔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님이 전화가 왔다.
모셔다 드렸고 택시비 얼마가 나왓는데 안받으시겠다고 하셨다.그리고 할머니가 많이 우셨다고 했다.잘 챙겨드려라고...
그뒤로 나는 회사에서 월급이 나오는 날이면 항상 나의 처와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고 용돈을 챙겨드리러 매달찾아갔다.
그러면서 정ㅅㄱ에게도 용돈을 챙겨드리러 2층집의 정ㅅㄱ 방에 갔는데 거기서 최ㅇㄴ이랑 둘이
나란히 앉아서 티비보며 사과갂아먹고 있었다.
이때까지 나는 그 여자가 지금의 상간녀 최ㅇㄴ 일줄은 몰랏다.
제4장 친자녀
정ㅁㅅ은 이ㅇㅈ의 차녀이다.
대전의 박모시와 결혼한후 대전에서 거주하며 지내다 박씨의 외도로 이혼한다.
현재는 이단종 빠져서
재산을 모두 이단교회에 탕진해있다.
이교회이름은 승리교회이다.
어찌나 교회에 미쳤는지
그의 둘째아들이 결혼후 며느리가 임신했는데 "목사님이 얘기하길
뱃속아기가 사탄 드렸다"고
"안수기도 해야 된다"고 며느리에게 안수기도를 하게했고 이로인해 유산을 하게되어 둘째 아들은 절연한다.
첫째 아들역시 둘째 아들 결혼식에서 들어온 축의금을
정ㅁㅅ이가 교회에 헌금해야한다며 2천만원을 준걸알고 더이상 안되겠다 해서 절연한다.(이때 헌금 2천만원을 받은 목사는 목사(여자)의 딸을 유학보냈다.)
지금도 교회권사인지 뭔지 하면서 하루 24시간중 10시간이상 교회에 다니면서 전도랍시고 돌아다닌다.
여기까지 1부라 하겠다.
2부는 2016년 7월 이ㅇ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것부터
오늘 까지 생생한
상간녀와 사진과 정ㄷㅎ 씨와
그 상간녀랑 내통 하고 있다는 증거 영상까지 첨부 해서 올리겠습니다.
1940년부터 있던 흑백 사진과 현재까지 증거사진등을 시간에 따라 나열하다 보니 늦었습니다.
기다려 주신분들 감사 하고
저는 현대자동차에 근무 하지 않기에 공장 라인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이에 이점 바로 잡고 죄송합니다.( 현차 노조 대의원중 1명에게 물어서 들은 얘기라 잘못 이해한듯 합니다.)
아울러 2부에는 2016년 7월1일 경부터 현재 까지의
법원에 제출된 서류와
제가 직접 촬영한 증거 사진을 올리 겠습니다.
제 3자는 모자이크 처리하고
이ㅇㅈ의 사건의 당사자들은
절대 모자이크 없이 이름만 익명으로 변경하겠습니다.
이 고발글의 마지막에는
모든 등장 인물들의
전화번호 와 실명을 공개 하겠습니다.
(그 당사자가 나를 고소 한다면 저는 대단히 감사 하겠습니다. 사실인것을 인정하는것일테니깐.)
P.s 부산 가정 법원
9월19일 우리는 이ㅇㅈ 모시고
반드시 출석 할것이다.
그리고
정ㄷㅎ아 휴가 잘 지냈지?